"전쟁터에서 제일 끔찍했던 게 뭐냐고, 작가 아가씨?
아가씨가 무슨 대답을 기다리는지 다 알아.
'전쟁터에서 제일 두려웠던 건 죽음'이라는 대답을 기대하겠지. 죽는 거였다고.
이걸 어쩌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들려줘야 할 것 같은데...
전쟁터에서 제일 끔찍했던 건, 남자 팬티를 나르는 일이었어.
그래. 바로 그게 제일 끔찍했다니까.
그 일은 뭐랄까, 나한테...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글쎄, 꼬락서니가 웃겼다고나 할까?
아이고, 이 한 목숨 바쳐 조국을 수호하겠노라고 전쟁터에 와서는 남자 팬티나 나르고 있다니!
남자 팬티는 길었어. 폭도 아주 넓고. 거의 다 인조 공단으로 만들어진 거였지.
여자애들 열 명이 같은 텐트에서 지냈는데, 모두 남자 팬티를 입었지 뭐야.
아이고, 세상에! 여름이고 겨울이고 그 팬티 한 벌만 입었다니까. 4년 내내 말이야.
마침내 우리는 조국의 국경을 넘어 적지로 쳐들어갔어.
사상교육을 받을 때마다 정치위원이 한 말마따나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를 잡은 거지.
처음 들어간 폴란드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우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어.
군복 일체를 새것으로 받았지...
그리고!그리고! 처음으로 여자 팬티랑 브래지어를 받았지 뭐야.
그 길었던 전쟁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호호호...상상이 가? 제대로 된 여자 속옷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봤다니까.
작가 아가씨, 안 웃네...아이고, 그런데 왜 우는 거야..."
롤라 아흐메토바, 2차 대전 당시 소련 여군 저격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