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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 포지션
크사

대학생활의 시작은 당구용어를 익히면서부터였다. 입학하고 첫 강의를 듣던 날, 나의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프로당구선수의 딸이었다. 그 친구랑 친해지면서 친구를 따라 당구장에 출입을 했다. 친구는 ‘물 150’의 아주 기초 수준의 플레이만 한다며 자신의 실력에 겸손해했지만, 당구선수인 아버지에게 배워서 그런지 자세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훌륭했다. 그 친구 덕에 친구 아버님이 운영하는 당구장이 동기들의 주 아지트가 되고,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우정을 쌓았다.

 

대학가에 위치한 친구네 당구장에 처음 갔을 때인데,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벽에 붙은 ‘300 이하 맛세이 금지’라는 표어였다. 맛세이가 뭐지?

 

맛세이. 찍어 치기라고 우리말로 번역하지만 아무도 찍어 치기라고 부르지 않는 당구 기술이다. 짜장면을 아무도 자.장.면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맛세이를 실제로 보면 확실히 뭔가 있어 보인다. 모두가 몸을 숙여 정면에 보이는 당구공의 중심을 향할 때 맛세이를 구사하는 플레이어는 고고히 위에서, 공의 중심을 향해 큐대를 내리친다. 그 자체만으로도 당구 고수의 포스가 나오는 듯하다. 하지만 게임에 아무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능력 밖의 허세는 주위에 피해만 준다. 맛세이로 허세 부리는 남자들 때문에 자기네 당구대 천에 흠집이 얼마나 자주 난 줄 아냐며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섹스에서 ‘맛세이’같은 포지션이라면, 단연 서서 하는 자세다. 스탠딩 포지션에 대한 도전을 뭐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남자라면, 아니 남녀 할 것 없이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본 섹스 자세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입김이 나오는 겨울에 페인트칠만 한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서서 성기의 각도를 맞추기 위해 낑낑대다 보면 푹신한 침대에서 나누는 쉬운 섹스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그녀의 쇄골 절흔, 쇄골 사이의 오목한 부분을 자기에게 달라며 휘몰아치는 격정을 표현한 랄프 파인즈를 잊을 수 없다. 나의 상상 속 ‘맛세이’ 포지션은 이런 것인데.

나는 섹스를 일상에 편입시키기 전 늘 꿈꾸던 섹스 판타지가 있었다. 하나는 물에서 사랑을 나누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선 채로 격렬하게 섹스하는 것이다. 수중에서 사랑을 나누기는 생각보다 꽤 여러 번 했다. 주로 욕조에서 남자와 함께 목욕을 하다 말고 삽입을 즐기곤 했으니까. 만족도도 괜찮다. 하지만 서서 사랑을 나누는 건 여러모로 도전이 많다. 파트너의 신장 차이가 괜찮은 자세를 잡는 데 굉장한 영향을 주고, 무엇보다 불편해!

 

물과 벽, 둘 중에 방 벽이 더 몸에 무리를 주리라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사람은 두 발로 육지를 걷지만 태어나기 전 우리 몸의 몇 배나 되는 양수에 있었으니 물이 더 편안함은 어떤 과학적(이라 하고 개인적인) 근거로 따져볼 때 일면 이해가 간다.

 

여하튼 불편하고, 게다가 삽입감도 별로 깊지 않은데 굳이 서서 섹스를 하려는 이유는 이 자세가 주는 ‘거대한’ 포스다. 맛세이가 주는 섹시한 포스에 끌려 기본 실력이 미치지 못함에도 굳이 당구 큐대를 위에서 내리꽂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뭐든 강력한 것을 다루려면 잘해야 한다. 잘하지 못하는 데도 맛세이를 하다 멀쩡한 당구대의 천을 찢고, 서서 섹스를 하다 허리에 무리를 준다.

 

허리와 허벅지 근력에 굉장한 자신감이 있다면 남자가 벽에 등지고, 안정적인 스탠딩 포지션을 구사하려면 여자의 등을 벽에 기댄 다음 다리를 남자의 허리나 허벅지에 감게 한다. 자세의 특성상 삽입감이 떨어지니 두 사람이 찰떡같이 밀착하는 게 관건. 잘하려면 자주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흐름이 끊이지 않고, 같이 하는 사람의 즐거움까지 같이 챙기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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